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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관광지


장안산


						  장안산군립공원은
						  여름에는 계곡, 가을에는 억새와 단풍으로 유명한 산
						  장안산은 금남정맥과 호남정맥을 거느리며
						  백두대간의 기운을 충청도와 전라도에 전하는 호남의 종산이다
  • 위치: 장수군 장계면 의암로19 (무룡고개) 길찾기
  • 위치: 장수군 번암면 방화동로 778 (방화동가족휴가촌) 길찾기
  • 높이: 1,237m
  • 장안산군립공원지정 : 1986. 8. 18

여름에는 피서지, 가을에는 억새와 단풍으로 유명한데 이 일대의 계곡과 숲의 경관이 뛰어나 1986년 장수군 군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이 산에는 26개의 크고 작은 계곡과 7개의 연못, 14개의 기암괴석, 5개의 약수터 등 연못과 폭포가 절경을 이룬다.

장안산 동쪽능선에는 광활한 억새밭이 펼쳐 있어 가을이면 산능선 전체가 억새로 뒤덮인다.
장안산 들머리는 여러 군데가 있으나 덕산계곡에서 범년동으로 가는 길목을 들머리로 하는 곳이 좋다.

(왼쪽)장안산 용소 / (오른쪽)장안산 전망
(왼쪽)장안산 용소 / (오른쪽)장안산 방화동계곡
억새 만발한 장안산 1


억새 만발한 장안산 2


억새 만발한 장안산 3



장안산은 장수읍에서 동향 30리 지점, 계남에서 동남향 10리 지점, 장계에서 남향 20리, 번암에서 동향 50리 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일명 영취산이라고 한다. 산의 높이는 1,237m 장수, 번암, 계남, 장계 등 4개면의 중앙에 있으며
그렇게 크지 않는 산이다. 

백두대간이 뻗어 전국의 8대 종산 중 제일 광활한 면적을 점유하고 있는 점과, 위용보다 위명을 자랑하고 있는 점에서
이 산의 인식이 재정립되어야 할 줄 안다. 이 산경에 대한 지리적 위치를 제대로 파악치 못하고 지리산을 호남의 진산
이라고만 알고 있는 데에는 많은 아쉬움이 있다. 호남정맥의 기봉이기 때문에 호남의 종산이다.

이 산의 정 위치를 알고 보면 얼마나 중요한 요새지인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지맥기국판을 합하며 장안산은 전국 8대 종산 중 제일 광할한 위치를 차지한 종산이며 전국토의 4분의 1을 차지하였다고
할 것이다. 이 산의 원맥과 지맥과 분수삼강을 일목 요연하게 기록하여 보면 장안산에서 서북류하며 금강이며, 서남류
하면 섬진강이 되고 동남류하면 낙동강이 된다.

이 산의 원맥, 즉 조산이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이 산까지 왔으며 이 산을 조산으로 하여서 조산이 어떻게 하여 어디까지
연결되었으며 3대강과의 관계는 어떻게 되었는가 상세히 기록하여 보기로 하자.

백두산에서 연지봉으로, 연지봉에서 노항령으로(함경북도 무산지방 삼백리), 노항령에서 서북래하여, 갑산동방 3백80리
에서 수산령 황토령이 생기고, 다시 후치령, 다시 서행하여 북청북방 1백리 지점에서 태백산이 있고, 함흥 동북쪽 3백리
지점에 황초령이 있다. 

1백리 지점에 녹향산, 설한령 함흥면 북방 2백 60리에 낭림산이 있다.
다시 동남향하여 영원 북쪽 2백40리 지점에 마유산, 영원동편 1백20리 지점에 흑전산 맹산 영흥경계에 오강산, 양덕
북쪽 1백 50리에 여라산, 양덕 북쪽50리에 장좌령, 고원 서북방 1백리에 죽전령이 있다. 

영흥 서남 2백80리 기린산, 양덕 북방칠십리에 재령산, 양덕 동방 10리에 화여산이 있다.
덕원지 40리에 마사산, 남행하여 덕원면 10리에 박달령이 있으며 안변서쪽 60리에 백계산 분수령을 이루며, 안변서남
1백50리 지점에 청로산, 추포령, 풍류산이 안변 남쪽 90리 지점에 있다.

준양 북쪽 90리에 판기령, 저유령, 추지령, 남행하여 판막령, 주령, 온정령, 동남쪽에서 내려와 130리 지점에서
금강산, 고성면쪽 60리 지점에 회전령에서 남쪽으로 내려와 진부령이 있고 미파시파사 생겨 있다. 

연수령 북쪽 50리 지점에 초짐령, 구룡령이 있으며 구룡령에서 오대산이 있는데 강릉 서쪽 1백 40리에서 진부령이 있다. 

삼척 북쪽 1백리에는 백봉령이 있으며, 삼척 서북쪽 40리 지점에는 대관령이 있다. 
다시 서행하여 건의령, 대박산, 태백산은 삼척 서남방 1백리 지점이다.  수다산, 백병산은 순흥 동북방 50리 지점에
있으며 마아산, 중적산, 소백산, 풍기서방 30리 지점에 있다. 작선산은 예천북방 10리 지점에 있고,  회국산은 문경
동북쪽 30리 지점에 있다.  계립산은 연풍 동북방 30리 지점에 있고 조령은 연풍 동북방 20리 지점에 있다.

이화치, 대야산, 불일산, 화산은 문경 서쪽 60리에는 속권산이 있다. 상주서방 70리에는 구봉산, 보은동방 50리에는
봉황산, 태상, 태이산, 고산, 금산은 서방 35리에 있으며 흑운산은 금산북방 30리, 추풍령은 황간서 20리에 있고,
계방산, 석악산, 삼설산, 황간 서남방 60리 지점에 있다. 

우두산은 거창 북서 60리 지점에 있고, 삼도봉은 지례서방 40리 지점에 있다.

대덕산은 무주 동쪽 70리 지점에 있다. 덕유산은 무주 동남방 1백리 지점에, 남덕유산은 장수 북방 50리 지점에 있다.  
육십령은 장수 동북방 50리 위치에 있으며 본월상 영연산 무룡궁에 이른다. 무룡궁이란 도의학적 용어로는 산맥 또는
신경능 가르켜 용이라고 한다.  

무용이란 용이 춤을 춘다는 말이며, 용이 춤을 춘다는 말은 산형이 힘차고 재주있게 생겼다는 말이라고 한다. 
이 곳 무룡궁을 일컬어 호서 일부와 호남 전역의 입수라고도 하는데 이 말은 금강이남의 충청남도와 섬짐강 이북 전역의
머리라는 말이다. 

옛 사람들은 호남인의 재질과 예기가 이상의 무룡궁의 산경에서부터 보았다는 것이다.
무룡궁의 산세가 힘차게 치솟아 장안석에 좌정한다.  그러므로 장안산은 호남과 호서의 조산이며 진산이다.
무룡궁에서 발원한 물은 서북 자수로, 금강의 최상류 지대이며 서남향수는 섬진강의 최상류이고 동남향수는 낙동강의
상류지대가 된다. 따라서 영취산(장안산)은 지리산의 부산이 되는 셈이다.

장안산 이하의 산경이 연맥하여 호남정맥이 형성되고 호남정맥은 남노와 북노로 분맥하며 부여, 임피, 옥구, 부안, 
목포, 영수, 광양에 이르는 산경, 분맥을 기록한다.

									

<사진자료 : 장수군청 facebook>

팔공산


						  팔공산은
						  장수읍 서남향 20리에 위치한 곳인데 
						  높이 1천 1백 51m의 고산이다
						  소백산맥에서 호남정맥이 시작되는 산이다.
  • 위 치: 장수군 천천면 비룡로 632 (와룡자연휴양림) 길찾기
  • 높 이: 1,151m
  • 유 적 : 합미성(지방 기념물 제46호)
  • 등산로 :
    • 제 1코스 : 장수대성초등학교 → 정상 → 서구리봉 → 오계치 →와룡자연휴양림
    • 제 2코스 : 장수대성초등학교 → 정상 → 서구리봉 → 장수읍 송천리
  • 주요 시설 : 팔성사 (전통사찰), 합미성, 경찰 무선 통신대

관련 사진

(왼쪽)팔공산 계곡사진1 / (오른쪽)팔공산 등산로 모습
(왼쪽)팔공산 자락 와룡자연휴양림1/ 팔공산 자락 와룡자연휴양림2
(왼쪽)팔공산 겨울모습1 / (오른쪽)팔공산 겨울모습2

장수읍 서남향 20리에 위치한 곳인데 높이 1천 1백 51m의 고산이다.

소백산맥에서 호남정맥이 시작되는 산이다. 장수는 거의 전지역이 소백과 노령의 분지적 협곡지대다. 

장수(長水)라는 글자 그래로 물이 길다는 곳이다. 물이 길다는 것은 금강의 최상류이자 섬진강의 최상류가 되며 수분치
에서 분수하여 남쪽으로 가는데 한 편 물은 금강이 되고, 다른 한 편 물은 섬진강이 된데 기이한 것으로 해석되며 이상의
수분치의 북류수는 발원하여 장수 천천, 진안, 용담, 영동, 옥천, 대덕, 연기군까지 오던 산을 따라서 올라간다. 그러므로
물이 거슬러 간다고 하여 「역류삼백리」라 하고 산이 오던대로 거슬러 올라갔다고 하여 「역산삼백리」라 한다.

영동군에 위치한 추풍령을 지나 덕유산, 장안산, 팔공산으로 해서 다시 추풍령밑으로 간다는 뜻이다.  따라서 팔공산을
호남의 진산이라고 하는 뜻을 장안산까지 산경의 연맥을 살펴보았지만 팔공산에 성수산, 마이산, 주졸산, 남노, 북노를
연결하여 충청도 일부를 이 산의 영향권 아래에 두고 경남을 경계로 하고 호남의 전역이 연결되어 있는 까닭에 이 산을
진산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 산에는 기원 6세기경에 팔성사라는 고찰이 창건되었고 팔성사에 예속된 암자 8개소가 있었는데 암자마다 성인이 
한 분씩 거처하고 있었으므로 팔성사로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또 이 산에는 합미성이라는 고성이 있는데 이 성은 최근
고고학자들의 고증에 의하면 백제시대 때 축조한 성이라고 하니 백제가 강성해지면서 마한을 병합할 때나 아니면 백제
근초고왕때 전방기지로 축성된 성인 듯 하고 1천 5백년 전이나 1천 6백년 전의 축성이라고 보는데 현재까지 성의 형태가
온전하게 유지되어 그 시대의 축성기술을 알 수가 있다.

이상과 같이 신앙적, 교육적, 군사적 요지로 선택되었다는 것부터가 중요한 위치임을 알 수가 있을 것이다.

현재는1,151m 고지에 경찰 무선통신대가 위치하고 있는데 이 역시 요충지인 까닭으로 생각된다.  이 산은 장수읍에서
보면 가장 아름답게 볼 수 있다. 아침 해를 이 근방에서 제일 먼저 볼 것이요, 저녁 달은 제일 앞에 지는 곳이다. 

풍부하고 우람한 모습은 천병만마를 앞에다 세워놓고 훈시하듯 하며 때로는 인자한 어머니가 온후한 모습으로 자식들을
굽어보는 듯한 산으로 억천만 년이 지나도 변하지도 않고 이 땅을 지켜줄 듯 하다.


동쪽에는 유명한 명당이 있다는데 누구의 글인지는 모르나 명사의 고시가 있어서 소개한다.

팔공산 한맥이 동쪽으로 와서(八公一脈向東來)
혈은 중봉의 둥근돌위에 있네(穴在中峰圓石上)
충암백호는 거기에 머리가 싸이었고(層岩白虎近蓄頭)
첩첩싸인 청룡은 몸을 멀리 둘렀구나(重疊靑龍遠抱身)
하늘을 찌를듯 소는관성은 뒤에서 응해주고(後應仲天鬼樂星)
조산은 봉황산이데 역수하여오네(前組逆水鳳凰山)
하늘이 감춘물건을 누가 알것이냐(天藏之物誰能識)
화성자가 그게 귀하고 부할것이다(二七華孫大富貴)


이상의 명당이 양화낙지라는 명당 즉 버들꽃이 땅에 떨어진 혈이라고 하며 그 크기가 대단하다고 한다. 그래서 춘추가
되면 수많은 풍류객들이 지나간다.


이 산에 팔성사가 있어서 산사를 찾아 배회하는 모습을 시로서 남겨 놓은 남고 유일수 선생의 고시를 소개한다.

산안개 서로 따르니(山霞連絡似相隨)
연기도 비도 아닌데 볼수록 기이하고(非雨非烟看且奇)
산사에 찾아간 스님이(歸僧却失山菴在)
멀리멀리 돌아서 찾아 가더라(遠遠排徊還復窺)

이 시는 안개가 자욱한 산중에서 심사하는 산승들의 모습을 노래한 것이라 하겠다.  이 시속에 내포되어 있는 정신문제는
어디에서 보아도 지극한 데가 있다. 조선조에서 척불사상으로 인하여 불가의 어려움이란 말로 다할 수 없으나 살기 위해
무엇을 얻으려고 극심한 고생이 이 시에도 모름지기 불굴의 신앙정신이 나타난다.

아무튼 팔공산에 성인 고승이 많이 수도하고 간 자취를 찾아 볼 수 있다.

이 산에서 수도를 통해 오도의 경지에 이르게 된 성인 고승들이 많았던 이유는 그만큼 명기명산이기에 그랬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봉화산


						  봉화산은
						  봄철에는 봉화산을 오르는 산등성이가 철쭉꽃으로 붉게 물들어
						  장관을 이루며, 봉수대의 유적이 지금도 선명히 남아 있다.
철쭉꽃 군락으로 절경을 이루는 산

봄철에는 봉화산을 오르는 산등성이가 철쭉꽃으로 붉게 물들어 장관을 이루며, 봉수대의 유적이 지금도 선명히 남아 있을 뿐만 아니라 오래된 봉화 봉수대라는 점에서 역사적인 의미가 크다 하겠다.

  • 위 치: 장수군 번암면 봉화산로 349(주차장) 길찾기
  • 높 이: 919m
  • 유 적 : 봉화 봉수대

봉화산은 번암면 노단리 동화리의 경계산령과 남원 야영면의 최북단 접경 지역에 위치한 해발 919m로 역사적인 유적지를
간직하고 있다.

봉화산은 봉수대의 유적이 지금도 선명히 남아 있을 뿐만 아니라 오래된 봉화 봉수대라는 점에서 역사적인 의미가 크다
하겠다.

고적조사자료(古蹟調査資料)에 따르면 "번암면 동화리 장안산 주(周) 140 간(間) 석축(石築) 남원 함양계(界)"라 하여 곧
봉수대는 번암면 동화리 장안산에 있고 봉수대의 둘레 약 140칸(약252m)이 되는데 돌로 쌓은 것으로 남원과 함양 간의
경계선에 있다.

이 봉수대는 대체로 통일신라이후부터 폐지된 것으로 보이며 백제와 신라의 국경 분쟁이 잦았던 운봉과 아영면 부근이
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특히 봉화산은 위 기록에서와 같이 봉화산은 전에는 장안산으로 불리워졌고 봉화, 봉수대가
봉화산으로 불리운 것이 확실하다. 봉화산 정상에서 88올림픽 고속도로와 지리산의 수 많은 연봉들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봄철에는 봉화산을 오르는 산등성이가 철쭉꽃으로 붉게 물들어 장관을 이루기도 한다.

현재는 정상에 산림 측량 기점인 삼각점이 있어 동화리 노단지역 산의 기점지역이다. 

									

관련 사진

철쭉이 만발한 봉화산 1


철쭉이 만발한 봉화산 2


철쭉이 만발한 봉화산 3


철쭉이 만발한 봉화산 4


철쭉이 만발한 봉화산 5


철쭉이 만발한 봉화산 6


철쭉이 만발한 봉화산 7


<사진자료 : 장수군청 facebook>

논개사당 & 의암공원


논개(시인: 변영로)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도 깊고
불붙는 정열은
사랑보다도 강하다.

아, 강낭콩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아리땁던 그 아미
높게 흔들리우며
그 석류 속 같은 입술
죽음을 입맞추었네.

아, 강낭콩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흐르는 강물은
길이길이 푸르리니
그대의 꽃다운 혼
어이 아니 붉으랴.

아, 강낭콩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 위치: 전북 장수군 장수읍 논개사당길 41 길찾기
  • 논개사당인 의암사에 유물 및 문헌 전시

주논개의 일생

1574. 9.3(갑술년,갑술월,갑술시) 신안 주씨 부(달문), 모(밀양박씨), 장수군 장계면 대곡리 주촌마을에서 출생 
1591 장수현감 최경회와 결혼 
1592 임진왜란 시 최경회가 장수에서 의병 모집 
1593. 6.29 진주성 함락 
1593. 7. 7 적장 게야무라 로꾸스께를 안고 남강에서 순절 


주논개에 관한 유적

- 1625. 남강바위 "의암"이라 새김(정대룡)
- 1722. 진주 에 의암 사적비(최진한)
- 1740. 진주에 의기사 건립(남덕하)
- 1846. 장수 논개사당에 "촉석의기 논개생장향수명비"(정주석)
- 1960. 논개생가지에 "의암주논개랑 생가지사적불망"비(김상근)
- 1954 ~ 1956. 남산에 의람사 건립, 1974 현 위치
- 1986 ~ 1987. 생가지 현 위치 이전
- 1980. 주촌초등학교에 동상 건립, 1986년 동상 이전(배형식)
- 1955. 논개영정(김은호 화백)
- 1955. 사액 "의암사" 현판(함태영 부통령)
- 1996. 의암 신안 주씨 논개지여 정려각(김상두)
- 2006. 1월 장수군과 진주시는 논개의 고귀한 얼을 더 높이 선양하기 위해 논개 표준영정 제작작가를 전국에 현상 공모
- 2008. 논개표준영정 지정(국가표준영정 제79호(2008.2.4)로 지정, 충남대학교 윤여환 교수 작품)


주논개 표준영정 상세정보(국가표준영정 제79호)

논개영정의 얼굴은 신안 주씨(新安朱氏) 용모 유전인자를 토대로 제작되었다. 윤여환 교수는 2006년 1월부터 주논개
(朱論介)의 얼굴 특징을 찾아내기 위해 ‘얼굴 연구소’에 의뢰해, 신안 주씨 여자의 얼굴 특징을 형질인류학적으로 분석
했는데, 논개의 생장지인 장수지역(장수읍과 함양군 서상면, 전북지역 등)을 중심으로 신안 주씨 문중을 촬영, 150여
군데의 얼굴을 계측 분석하여 신안 주씨가 가지고 있는 동일형태의 용모 유전인자를 추출해 내어 논개에 가깝다고 판단
되는 얼굴 모형을 찾았다. 

논개영정의 얼굴화장은 진수아미(溱首蛾眉) 미용법으로 제작되었다. 이 화장법은 족집게를 이용한 ‘뽑는 미용법’인데
고대 여인들에서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유행한 미용법으로, 진수아미는 넓고 네모반듯한 이마에 초승달 같은
눈썹인 여자얼굴을 형용한 말로서, 오랫동안 이 미용법이 아름다운 여인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다. 고구려 벽화의 여인상,
가락국기 김수로왕의 황후 허황옥 등과 조선전기 하연부인상, 운낭자상 등 조선여인들의 얼굴도 진수아미 미용을 한
경우가 많아 논개얼굴도 이 미용법을 따랐다.

논개영정의 머리모양 고증은 출토된 변수(1447~1524)묘 목각인형 주악상의 머리모양, 호조랑관계회도(戶曹郎官契會圖,
1550년경)와 관련서적 등을 참조하여 재현하였다.

논개영정의 복식은 출토된 당시 의상과 출토 목각인형 그리고 당시에 제작된 그림을 참고로 ‘고전복식전문연구소’에 제작
의뢰해 3차례의 논개의상 제작과 가체머리 고증 및 재현 등 철저한 고증과정을 거치는 과학적인 방법이 동원되었다. 

논개영정 의상문양은 당시 유행하던 문양인 연화만초문사(蓮花蔓草紋紗)인데 안동김씨 묘(1560년대)와 변수(1447~1524)
묘 출토복식을 참조하여 제작되었다. 복식은 거사일이 하절기인 점을 고려하여 여름복식으로 하였다. 

논개영정의 옥가락지 고증은 “왜장을 유인하여 열손가락에 힘을 다해 껴안고 함께 강에 투신했다”는 내용의 여러 고문헌
관련 기록들을 참고하였다.

논개영정의 표현기법은 조선시대 전통영정기법으로 제작되었는데, 비단(畵絹)이라는 독특한 재질을 살려내는 배채법
(背彩法)과 육리문법(肉理紋法)등을 활용하여, 얼굴표정에서 배어나오는 전신사조(傳神寫照)와 정치하고 부드러운
질감이 잘 나타났다는 평가를 받았다. 

논개영정의 표정과 자세는 의기에 찬 모습으로 열 가락지를 끼고 투신순국을 위해 왜장(毛谷村六助)을 향해 가려고 하는
자세로 설정했다.

								

관련 사진

논개사당 전경

논개사당 전경


논개사당 앞 의암호 전경

논개사당 앞 의암호 전경


논개사당의 봄

논개사당의 봄


논개사당의 가을

논개사당의 가을


논개사당 앞 의암호

논개사당 앞 의암호


논개사당 앞 의암호 (산책하기 좋은 데크길 조성)

논개사당 앞 의암호 (산책하기 좋은 데크길 조성)


<사진자료 : 장수군청 facebook>

주논개에 대한 상세정보는 (사)의암주논개정신선양회 홈페이지( www.nongae.co.kr)를 참조하십시오.

덕산계곡


							  방화동 가족휴가촌 및 자연휴양림에서 원시림 등산로를 따라 오르면 덕산계곡에 다다른다.
							  울창한 원시림과 맑은 물, 기암괴석이 조화되어 절경을 이루고 있어 용이 살았다는 용소가 있다.
  • 위 치: 장수군 장수읍 덕산리(장안산군립공원) 길찾기

장안산 군립공원의 제 1계곡인 덕산계곡은 울창한 원시림과 맑은 물 기암괴석이 조화되어 절경을 이루고 있어 용이 살았
다는 용소가 2개소, 민들바위, 용바위, 신선바위, 정승바위 등 20여개의 기암과 은골, 절골, 감골 등 헤아릴 수 없는
골짜기가 있고 맑은 물이 흐르는 크고 작은 소가 10여 군데나 있다.

계곡의 원시림을 따라 하류 4km 지점에는 방화동 가족휴가촌 및 자연휴양림이 있으며, 봄에는 진달래, 산철쭉이 만발하고
여름에는 맑은 물과 녹음, 가을 단풍, 겨울의 설경 등은 작은 금강산처럼 4계절 동안 절정을 이룬다.

장수읍에서 정기 버스가 매일 2회 운행되고 도로 포장이 되어 있으며 읍소재지에서 8km, 번암 방화동에서 4km 지점에 있는
군민 휴양지이다. 		

									

관련 사진

덕산계곡 '용소'의 가을 (단풍으로 절경을 이룬다)

덕산계곡 '용소'의 가을 (단풍으로 절경을 이룬다)


덕산계곡 '용소'의 여름

덕산계곡 '용소'의 여름


덕산계곡 '용소'의 여름

덕산계곡 '용소'의 여름

<사진자료 : 장수군청 facebook>

토옥동계곡


						  토옥동 계곡은
						  북덕유산과 남덕유산 사이의 계곡인데 이 계곡에는 수려한 경관이 있다.
						  이 계곡은 양쪽의 물이 합해져 장관을 이룬다.

토옥동 계곡은 북덕유산과 남덕유산 사이의 계곡인데 이 계곡에는 수려한 경관이 있다.
양쪽의 물이 합해져 비폭을 이루는데 비류직하 삼천척이라는 말은 누가 어디를 말했는지 모르나 보고 보아도 웅장하기만 하다.

  • 위 치: 장수군 계북면 양악리(남덕유산) 길찾기

토옥동은 장수군 계북면 양악리에 위치하고 있는데 덕유산은 무주의 산으로 아는 사람이 많지만 이 산은 주봉들이 있는데
하나는 무주군 안성면에 위치고 있는 북덕유산, 장수군 계북면 양악리 상단에 위치하고 있는 1,507m인 남덕유산으로
나뉘어져 있다. 북덕유산과 남덕유산 사이의 웅장하고 광대한 계곡이 있다.

이 계곡을 세칭 토옥동 이라고 한다. 남덕유산과 북덕유산 사이의 산능선에는 일간 정도의 등산로가 있다.
능선을 넘으면 경남 함양군과 거창군이다. 산능선 등산로에는 1년 사시사철 수 많은 등산객이 내왕한다.

이 곳 토옥동은 북덕유산과 남덕유산 사이의 계곡인데 이 계곡에는 수려한 경관이 있다. 
양쪽의 물이 합해져 비폭을 이루는데 비류직하 삼천척이라는 말은 누가 어디를 말했는지 모르나 보고 보아도 웅장하기만 하다.

굽이굽이 직폭과 와폭을 형성하여 하단부에 내려오면 산은 잠잠하여지고 수성은 온화하여 인가가 근접하였음을 알 수가
있다. 산세는 잠잠하고 수성은 옹옹한데 남행받이 아담한 논들이 있다.

이 곳에 천수백년 전 심방사가 있었던 고사지라고 한다.  이 심방사는 양악 마을에 백해현이 있을 때 창건했던 사찰이라
하는데, 백해현 수명과 동시에 폐찰 되었으리라 생각되는 고찰이다.  이 심방사의 유물은 토옥동 입구 용연정에 석탑이
있는데 이 석탑이 심방사의 석탑이라고 하며 이상의 유물로 미루어 보아 상당한 수준의 도장으로 추측된다. 또 심방사
에서 우편 산하에는 정토암이라는 심방사에 예속된 암자가 있었는데 정토암사지에는 지금도 사찰의 계단이 역력히 보인다.

1911년대에 한일 합방이라는 우리 민족의 치욕이 있을 때 호남 의병대장 문태서 장군과 의병대장 박춘실 장군이 의병을
초모하여 장수, 무주, 진안, 함양, 거창 등지의 왜병을 섬멸했다. 그 후 문태서 장군은 힘을 길러 서울로 진격하여 일본
통감부를 공격, 이등방문을 생포할 계획으로 의병을 발진시켜 북진 중 충청도의 이원역을 공격한 저 유명한 전공의
발상지가 토옥동이라는데서도 이 계곡과 우리 민족사는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고 할 것이다. 

1597년 정유재란 때에는 왜인들이 이 산하에까지 와 보니 운무가 자옥한지라 더 이상 입산하지 못하고 돌아가며 하는
말이 산이 후덕하니 이 산에 많은 생명이 은신한 듯 한데 만일 전진하면 실패할 것이라며 퇴각했다는 구전도 있다.  

여하간 이 계곡은 역사적으로 유서깊은 곳이며 경관이 수려한 유휴지이며 고산식물의 채집연구에도 빼놓을 수 없는
명승지임을 보여 주고 있다.

									

관련 사진

토옥동계곡 1

토옥동계곡 2


토옥동계곡 3


토옥동계곡 4


토옥동계곡 5

<사진자료 : 장수군청 facebook>

지지계곡


지지계곡은
장안산과 백운산 사이에 위치한 10km의 계곡으로
울창한 수림과 청류수가 조화를 이뤄
사시사철 아름답지만 특히 만추의 계곡은
온통 붉어지니 탄성이 저절로 나온다
  • 위 치: 장수군 번암면 지지리 길찾기
  • 드라이브코스 :
        장계 →오동댐 → 대곡리 논개 생가지 → 무룡고개 → 지지 계곡 → 동화댐 → 백용성조사생가,죽림정사 →
        번암면 소재지 → 88 고속도로,남원

이 계곡은 번암면 지지리와 장계면 대곡리 상단이 서로 면계를 이루며 영취산에서 한 맥은 경남 함양군 백전면을 거쳐
지리산으로 가고 정맥은 장안산으로 이어진 협곡에서 시작하여 지지리, 동화리,남원, 구례, 곡성을 지나 삼백리 하동
포구에 이르는 섬진강의 최상류임.

장안산과 백운산 사이에 위치한 10km의 계곡으로 울창한 수림과 청류수가 조화를 이뤄 사시사철 아름답지만 특히
만추의 계곡은 온통 붉어지니 탄성이 저절로 나온다.

울창한 수림을 이루고 있는 나무 중의 하나인 고로쇠 나무에서 2~3월에는 고로쇠물을 채취해 농가의 소득을 높이고
있으며 두릅, 더덕, 도라지, 취나물, 고사리, 표고 버섯, 한봉 등이 채취되고 있음.	

									

관련 사진

지지계곡 1

지지계곡 2


지지계곡 3


지지계곡 4


지지계곡 5

<사진자료 : 장수군청 facebook>

논개생가 관광지


논개생가지는
조선 선조 25년 임진왜란 때 진주에서 왜장을 죽이고 순국한
주논개의 생가를 복원한 곳으로 장계면 대곡리 주촌마을에 있습니다.
  • 위           치: 전북 장수군 장계면 의암로 558 길찾기
  • 주 요  시 설 : 생가 2동 외에 기념관, 기념비, 동상, 단아정, 부조, 인공폭포
  • 주요 볼거리 : 주촌민속마을(논개생가마을), 장수도깨비전시관, 대곡관광지

장계면 대곡리 주촌마을은 의암 주논개가 태어난 마을이다. 1574년 9월 3일의 4갑술의 특이한 사주를 타고난 논개는
주촌에서 어린시절을 보냈다. 지금 마을은 오동제에 수몰되고 남아있는 당산 옆에 생가만 복원되었다가 다시 1996
~2000년도에 2만평의 부지에 확장하였으며 생가 2동외에 기념관, 동상, 단아정, 부조, 인공폭포 등이 있다.

조선 선조 25년 임진왜란 때 진주에서 왜장을 죽이고 순국한 주논개를 기념하기 위해 장수군민들의 정성으로 1960년
건립하였다. 본래 이 비는 장계면 대곡리 주촌마을 입구에 있었으나 오동댐 건설로 수몰 지구 내에 있어서 1987년
생가지로 이전하였다. 

비의 전면에는 "의암논개낭생장지사적불망비" 라고 새겨져 있으며, 후면에는 주논개의 생애가 간략하게 기록되어 있다. 
현재 정면, 측면 모두 1칸으로 된 보호각이 세워져 있다. 

								

관련 사진

논개 기념관

논개 기념관


논개 동상

논개 동상


논개생가 연못 1


논개생가 연못 2


복원한 논개생가

복원한 논개생가


논개생가의 겨울

논개생가의 겨울


<사진자료 : 장수군청 facebook>

우리 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향교 '장수향교' (보물 제272호)


장수향교 소개

장수향교는 조선 태종 7년(1407)에 덕행이 훌륭한 사람들을 모셔 제사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을 위해 나라에서 세운 지방교육기관이다. 지금의 자리로 옮긴 것은 숙종 12년(1686)때의 일이다.

대성전은 공자를 비롯하여 여러 성현께 제사지내기 위한 공간으로 앞면 3칸·옆면 3칸 크기이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이며, 건물의 크기는 별로 크지 않고 앞면 가운데에는 여닫이문을 달았다. 오른쪽과 왼쪽 칸에도 같은 형식의 문짝 1개씩을 달았는데 그 옆에는 우물 정(井)자 모양의 창을 달았다. 지붕 처마를 받치고 있는 장식구조의 겉모양을 화려하게 꾸몄는데, 이러한 장식은 조선 중기 이후 건축의 특징적인 요소이다.

임진왜란 때 전라도를 비롯한 열읍의 향교가 거의 소실되었으나 오직 장수향교만 전화를 입지 않고 보존되어 조선 전기 향교의 형태를 잘 알 수 있게 되었다. 이는 충복(忠僕) 정경손(丁敬孫)의 공로이다.

장수향교의 부강문 입구에는 원노(院奴)인 정충복비가 세워져 있다. 임진왜란 때 왜장 고바야가와[小早川隆景]의 부장 안코쿠시[安國寺惠瓊]가 장수에 침입하였을 때, 원노인 정경손(丁敬孫)이 교복을 입고 문묘 앞에 꿇어앉아 경서를 외우며 말하기를, “만약 향교에 들어오려거든 먼저 내 목을 베고 들라.”고 하였다. 이에 왜군들도 그의 기개에 감복하여 ‘본성역물범(本聖域勿犯 : 이 성역에는 들어가지 말라)’이라는 쪽지를 주고 물러가 왜군 후속부대의 피해를 당하지 않았다고 한다.
* 자료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 위           치: 전북 장수군 장수읍 향교길 31-14 길찾기
  • 문의처 : 장수향교 관리사무실 063-353-2540
  • 문화관광해설사안내 063-350-5557

관련 사진

장수향교 전경

장수향교 전경


장수향교 전경


대성전 입구

대성전 입구


대성전 입구

대성전 입구


명륜당

명륜당


장수향교 단청

장수향교 단청


<자료 출처 : 장수군 문화관광 홈페이지, 사진 출처 : 장수군청 facebook>